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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연 2019-10-09 09:17:58 | View : 19
제      목   기도편지(309호) -설교-역대상 21장 13절~30절, "재앙을 막는 예배(2), 조동천 목사(예수뿐인교회 담임목사), 19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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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앙을 막는 예배(2)
본문: 역대상 21장 13절~30절
설교: 조동천 목사(예수뿐인 교회 담임목사)


1. 예배의 기회(15절)
  예배의 주도권 : 하나님의 슈브



2. 예배의 대가 (20-25절):  
   22절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개역개정 역대상 21:22 여기 보면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것도 앞의 18절을 살펴보면 그렇게 천사의 심판이 멈추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갓이라는 선견자에게 이 재앙을 피하는 온전한 예배란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18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 개역개정 역대상 21:18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가르쳐 주셨을 때, 그럴 때 다윗의 반응이 무엇이냐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가서 그 오르난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22절). 타작하는 이 마당 자체를 다윗에게 넘기라는 겁니다. 자기가 값을 줄테니까 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르난이 23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 개역개정 역대상 21:23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엇이냐면 소들은 번제로 드리고, 곡식을 떠는 기계는 당시에 나무로 만들어 졌을 것입니다. 그 기계들을 화목으로 다 태워서 들리고, 그 다음에 밀, 자기들의 먹어야 될 식량을 소제물로 삼아서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드리라고 합니다. “다 그냥 가지십시오.” 그렇게 오르난이 다윗에게 바치면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랬더니 다윗이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24절을 보세요.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 개역개정 역대상 21:24

   번제를 드리는데 내가 대가를 치루겠다, 내가 값을 치루고, 내가 사서, 내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 반드시 내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이 있어야 됩니다. 내 물질이 가야 되고, 내 시간이 가야 되고, 내 재능이 가야 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냥 다윗은 얼마든지 왕이기 때문에 오르난의 이런 희생을 그대로 그냥 봉사로 받아들이고 남이 헌신한 그것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손해 하나도 안보고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내가 대가를 다 치루겠다”, 그리고서 25절에 보면 금 600세겔을 달아서 오르난에게 대가를 치루고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예배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배는 내 생명과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여기에 보면 너희 몸을 ...제사로 드리라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영적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몸을 드리는데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예배이면서 영적 예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라즈니시의 「행복론」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기가 얼마나 인기가 없는가 하고 한탄하였습니다. “참 불공평하다. 인간들은 착한 것을 이야기 할 때 소라고 비유하고 못되고, 욕심 많고, 나쁜 것을 비유할 때는 '돼지같다'고 한다.” 그리고는 돼지는 또 소에게 말합니다. "너는 우유와 크림을 준다. 그러나 나는 더욱 많이 준다. 나는 베이컨과 햄을 주고 털을 주고 그들은 심지어 내 발을 소금에 절여 먹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돼지일 뿐이다. 왜 사람들은 너만 좋아하고 나는 좋아하지 않는 걸까?" 암소는 잠시 눈을 껌뻑 껌뻑하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글쎄, 아마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나의 가진 것을 주기 때문일 꺼야. 그렇지만 너희 돼지들은 죽어서야 주잖아."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죽을 때, 내게 다 필요가 없을 때, 내 삶에서 무의미한 것, 죽은 시간들, 죽은 것들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안됩니다. 산제사로 드려져야 됩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시간과 가장 고귀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그것이 산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기꺼이 대가를 치루면서 예배드릴 준비가 돼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셨던 감격적인 예배가 창세기 22장에 나오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도적이었습니다. 네 아들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똑같이 그랬을 때 아브라함이 기꺼이 자기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시고 받은 것으로 여기시고 그를 축복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이삭과 같은 최고의 보물, 가장 값진 것, 하나님 앞에 대가를 치르면서 내려놓을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것은 도저히 안되겠는데요”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예배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루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은 철저히 대가를 요구하는 예배를 원하실까? 다윗은 또 왜 그렇게 꼭 대가를 치루면서 예배를 드렸을까? 실제로 하나님은 대가를 치루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최고의 것으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위해서 제물로 삼으시고 십자가에서 번제처럼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정당한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예배는 그분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분이 뜻을 돌이키시고 뉘우쳐서 우리를 징벌치 않으시고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가진 귀한 것으로 그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배를 소홀히 여기시지 마시지 바랍니다.  


3. 예배의 결과 (26-27절):
  예배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응답받은 예배인데 그 예배의 축복은 무엇이냐면 심판의 칼이 칼집에 꽂아 지는 것입니다. 26-27절 같이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 개역개정 역대상 21:26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 개역개정 역대상 21:27

  멈추었지만 예배가 응답받는 예배가 되지 않으면, 칼을 뽑아 든 것이 멈추었지만 예배가 응답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칼이 칼집에 꽂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다시 심판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멸망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응답받지 않는 예배는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응답 받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천사에게 명령하셔서 “칼을  칼집에 꽂으라” 이제 완전히 진노가 멈추게 됩니다. 예배는, 온전한 예배는, 대가를 치루는 예배는 이렇게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예배의 최종적인 결과, 가장 큰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겸비한 인간이라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한번 보세요. 30절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하더라 - 개역개정 역대상 21:30 여러분 잘 보세요. 감히 하나님 앞에 가서 묻지 못할 정도로 겸비한,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예배에 응답의 결과가 이루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생기는 것이 바르게 예배드리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 30절과 대조되는 다윗의 모습이 13절입니다. 13절 같이 보겠습니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 개역개정 역대상 21:13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습니다. 사람의 손에 빠지는 것은 굉장히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바뀝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바르게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는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람 눈치보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하나님 두려운 줄은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손에는 혼은 나도, 사람한테는 창피한 꼴 당하기 싫어요.” 라고 합니다. 기도는 제목도 “하나님 이것을 좀 면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보고 있고 알고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이 내 실수를 아는 것만 두려워하게 됩니다. 예배를 잘못 드리게 되면 그런 위선과 외식이 나오게 됩니다. 다윗이 이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쉽게 하나님의 손에 빠져드는 것은 괜찮다고 하였던 사람이, 감히 무서워서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이제 이 번제단을 붙들고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베옷을 입고 예배하는 심정이 됩니다.

  이것이 왜 위대하냐면 다윗이 왕이 아닙니까? 두려운 사람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누가 왕을 컨트롤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왕이 두려운 존재, 신이, 하나님이 생긴 것입니다. 예배는 아무리 높은 사람도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낮출 수 있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정말 이 민족에 재앙에 멈추는, 이 예배의 은혜는 무엇이냐면 왕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왕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을 때 그 민족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니 왕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백성들이야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재판관이 없어도 경찰이 없어도 교사가 없어도 두려움으로 바르게 행하고 말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예배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사실 3-4절에 보면 요압이 왕을 말렸습니다. 백성의 계수를 세고 교만해질 때 요압이 말리지 않았습니까? “왕이시여 왜 그런 화를 자초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왜 숫자를 세십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했는데도 4절에 보면 왕이 요압을 재촉해서 명령을 했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몰랐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30절에 보니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다윗이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예배의 결과가 뭘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진정 온전한 예배는 재앙을 멈추게 하고 심판을 멈추게 한다는 이 은혜와 또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1970년 4월 아폴로 13호  
여러 해 전 달나라를 향하여 아폴로13호를 쏘아 올릴 때에 미국의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아폴로13호는 현대 과학의 걸작품입니다. 이것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완벽합니다. 이것이 고장 날 확률은 백만분의 일입니다." 모든 사람의 확신 속에 아폴로13호는 달나라를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지구로부터 2만 마일을 벗어나지 못한 지역에서 산소통이 터지는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돌아올 방법도 막막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미국 텍사스 휴스톤에 있는 우주 지휘소에 비상연락을 취하고 회신을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휴스톤에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2만 마일이나 떨어진 우주선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주 지휘소에서는 다만 북극성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서 돌아오라고 회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우주의 미아가 될 위험에 빠진 것입니다. 그때에 미국의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함께 아침 9시에 기도하자고 호소했습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군인도, 어린이도, 온 국민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폴로13호가 무사히 태평양에 떨어진 것입니다. 구조된 우주 비행사는 배에 오르자마자 군목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그 주간 타임지 표지로 크게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우주 비행사 중의 한 사람인 스위저트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구에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아폴로13호 사건에서 인류는 인간의 능력과 과학의 한계를 배웠습니다. 이 사고는 확률 상 100만분의 1에 속하는 사고였다고 합니다. 미국 상원의 결의로 닉슨 대통령을 비롯해서 우주 비행사의 무사 귀환을 위해 4월 19일 9시를 기하여 온 국민이 기도를 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조찬 기도회 때 레너드 국방 장관은 그의 간증에서 "미국의 국방의 힘, 경제의 힘, 과학의 힘은 사상 최강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을 떠나서는 모두 무(無)에 가까운 것입니다." 라고 이렇게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는 예배 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과학이 총 집약된 우주 발사기지에서 합심기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휴스턴의 우주 과학기지만큼 여러분의 삶이 완벽하게 잘 짜여져 있습니까? 백만불의 일의 오차도 없는 인생이십니까? 빈틈이 없습니까? 얼마나 엉성하게 살아갑니까? 아침에 먹었던 생각 저녁에 다 달라지고, 전화하면서 막 생각이 바뀌고, 결정이 막 뒤집어지고, 엉망징찬이 삶인데, 하나님 앞에 예배 없이, 기도 없이, 그분의 은혜 없이 어떻게 여러분 재앙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아세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저는 그렇게 합니다. 침대에서 또르륵 굴러 무릎이 먼저 바닥에 닿게 해서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저는 예배하는 순간입니다. 잠이 깨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어떻습니까? 눈을 처음 뜨는 순간에 예배하십시오. 재앙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마지막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분을 경외함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새벽기도! 예배의 기회가 얼마나 큰 은혜예요. 그 새벽기도 나오는 순간은 여호와의 사자가 멸망시키려 가는 길을 멈춘 자리 아닙니까? 수요 예배, 금요 심야 기도회, 주일 예배! 가능하면 예배로 하나님께 기쁘게 해드리십시오. 대가를 치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해지고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재앙들이 다 제거 되는 그러한 축복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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